불가능에 도전하는 비만 팬더의 악전고투기 혹은 유쾌한 쿵푸드림실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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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만 팬더가 용의 전사(쿵푸마스터)가 된다는 허무맹랑한 스토리
젠장, 이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그저 먹는거밖에 모르고 엄청나게 뚱뚱해 계단 오르는것도 힘에 부치는 국수집 출신 비만 팬더가 쿵푸 마스터가 되어 악당을 물리치고 최강의 전사가 되겠다니... "꿈은 이루어진다"는 우리의 그 유명한 월드컵 구호가 있긴 하지만, 구호는 구호일뿐 현실은 언제나 냉정하거나 냉혹하기에 너무 이야기가 허무맹랑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설정에 비약과 우연이 난무하는 엉성한 스토리로 알맹이는 하나 없고, 이거 뭐 대충 D라인 몸매를 가진 비만 팬더 한마리의 캐릭터와 CG로만 승부(?)하려는거 아닌지 하는 그런 우려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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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 팬더의 스토리는 앞서 말한대로 단순하고 좀 설정이 황당하다. 평화의 계곡에 살고 있는 뚱땡이 팬더 포는 국수가게를 하며 가업을 잇기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을 뒤로하고 쿵푸에 푹 빠져 산다. 어느 날 쿵푸의 성전 제이드 팰리스에서 개최하는 용의전사 선발대회 구경을 갔다가, 무예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5인방제자(타이그리스-호랑이, 멍키, 크레인-학, 맨티스-사마귀, 스네이크-뱀)들을 제치고 우연하게(혹은 운명처럼) 용의전사로 뽑히게 된다. 포는 비천한 출신과 형편없는 무예로 갖은 시기와 고초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무예를 배우고 용의문서에 담긴 비급을 깨달아 악당 타이렁을 물리치고 마을의 평화를 지켜낸다.

2. 불가능에 도전하는 비만 팬더의 악전고투 -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디다스 TV광고를 보면 "Impossible is nothing"이라고 한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란 이야기인데 불가능이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이라니, 사실 아무리 광고라지만 그 한 문구만 보았을 때는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좀 더 친절하게 다른 부가 카피들과 함께 있을 때는 느낌이 좀 달라진다.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 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불가능,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사람들을 용기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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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 팬더에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포의 눈물겨운 노력은 정말 악전고투 그 자체다. 어찌어찌하다 용의 전사가 되었지만 주위의 시기, 질투, 방해는 물론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열등감, 자괴감은 포를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과 서로가 서로를 믿는 신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만 팬더는 일취월장하며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단기간에 무예를 익혀 쿵푸의 달인이 된다. 사람이 얼마나 시시껄렁하면 애들이나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걸 느끼냐고 이야기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포를 통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새삼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유쾌하고 웃고 즐기면서 말이다.
 

3. 꿈은 이루어지는가? - 이루었다 못이루었다가 중요한게 아니다.

세상은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라고 하고, 그런 사람들을 뭔가 특별하고 아주 대단한 사람인양 추앙한다. 하지만 먹고 사는 "생활"이라는 기본적인 문제조차 쉽게 해결하기 힘든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자기 꿈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또 한편으로 세상은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어설픈 이상 따위는 집어치우고 자기 분수에 맞게 현실적으로 살라고 더 많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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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수가게를 하며 우리 집안은 혈관에서도 육수가 흐른다는 포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포에게 국수 만드는 일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국수가게만 하면 별다른 고민없이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기에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포는 쿵푸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다며 끝내 국수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다수가 가는 편한 길이 아닌, 자기 꿈을 이루겠다는 소수자의 길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어떤 때는 내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살아가기도 하고 설사 그 꿈이 무엇인지 안다 하더라도 꿈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꿈을 꾸는것은 돈 드는 일도 아니고, 한번쯤 미친듯이 도전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내 일상과 삶은 비록 비루할지라도, 황금빛으로 가득찬 또 다른 삶의 꿈을 꾸어본다는게 미친짓이거나 죄는 아니다.

쿵푸팬더에서 포는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었지만, 나는 꿈을 이루었다 못이루었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루어내면 더 좋겠지만 꿈은 그냥 꿈으로만 끝날수도 있고 못이룰수도 있다. 아마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가 무서워 꿈조차 꾸지 않고 살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너무 우울한거 아닐까...?

꿈이 없는 시대, 그저 생활에 매몰되어 밥벌이, 돈벌이에 치여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는 내 일상이 곤궁하게 느껴진다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그리고 무조건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 번 행동으로 실천해 볼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보고 계획을 짜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4. 유쾌하고 재미있는 쿵푸드림실현기

처음 우려(?)와 달리, 쿵푸의 "ㅋ"자도 모르는 비만 팬더가 쿵푸 고수가 되어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지킨다는 스토리의 이 영화는 황당무게한 스토리와는 별개로 솔직히 말해 나를 감동시켰다. 유쾌하게 웃을 수 있어 좋았고, 다 알고 있지만 실천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의 교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어 더 좋았다.

엊그제 쿵푸 팬더를 보고 온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인 조카에게 이 영화가 재미있는거 말고 느낀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여조카의 대답은 "이모부, 뭐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을거 같구요, 또 포기해서는 안되는거 같아요" 였다. 그렇다. 초등학생도 아는 이 쉬운 교훈을 나는 내 생활에서 너무 잊고있거나 혹은 모른체하고 살았던거 같다.

쿵푸는 어렵지 않다. 누구든지 꿈을 꾸고 열심히 노력하면 쿵푸 마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주먹을 내지르거나 간단한 발차기 정도는 내 것으로 만들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작은 꿈이든 큰 꿈이든 꿈을 가지는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꿈도 못꾸며 살기에는 우리 한 번 뿐인 인생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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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스탠드가 결혼으로 이어지다 -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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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이라는 도박에 대한 이야기
라 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라스베가스라 하니 무슨 도박에 관한 영화같은데, 영화 포스터는 그런것과는 거리가 좀 멀어보였고... 이거 제목으로 관객들 낚시질하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은 색안경을 끼고 영화를 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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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는 알다시피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박의 도시이면서 또 한편으로 결혼과 이혼이 가장 쉬운 도시이기도 하다.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은 제목에 라스베가스가 들어가고 라스베가스가 나온다고 해서 도박에 대한 이야기로 착각하기 쉬운데, 이 영화는 도박이 아니라 라스베가스에서 쉽게 결혼한 남녀의 결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잭(애쉬톤 커쳐)은 결혼이 상대방에게 베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결혼이라는 도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2. 스토리 - 원나잇 스탠드가 결혼으로 이어지다
대 략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매사가 계획 투성이인 조이(카메론 디아즈)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코 앞에 두고 차인 뒤 기분 전환을 위해 라스베가스로 놀러간다. 매사가 진지하지 못하고 뭔가 엉성하고 두리뭉실하게 살아가는 잭(애쉬톤 커쳐)은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러 라스베가스로 간다. 우연히 함께 하게 된 둘은 술에 만취되어 결혼을 하고 다음날 헤어지려 하지만, 조이의 돈을 슬롯머쉰에 넣고 잭이 잭팟으로 300만달러를 타게된다. 둘은 돈의 소유권을 두고 법정까지 가서 다투다 6개월간 부부로의 노력을 하라는 판결을 받고 임시로 같이 살다가 돈을 반반씩 나누어 이혼하기로 한다. 이후 이 둘의 6개월간의 불안한 동거 혹은 결혼생활이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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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달러 잭팟 당첨금을 두고 그 돈을 차지하기 위해 법정 판결을 받고 6개월간의 불안한(?) 결혼생활에 돌입하는 두 남녀]

3. 결혼은 베팅인가?
사사건건 맞서게 되는 두사람, 화장실 사용습관부터 집안 일 하나하나 다 서로 맞는게 없다. 그렇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혼자 살다 같이 살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사귀지도 않고 그냥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살게되어 그런거 아니냐고? 물론 그런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것이다. 하지만 몇 년을 사귀고 결혼한다해도 긴 시간을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살아온 남자, 여자가 아무 문제없이 조화롭게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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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건건 완벽(?)하게 대립하는 두 남녀]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결혼도 나와는 다른 사람에 대해 베팅을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베팅이니 도박에 비유한다고 기분 나빠할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또 그렇게 많이 틀린 이야기 같지도 않다. 다만 이 베팅이 일반적인 도박의 베팅과 다른점은 우리가 아는 일반 도박은 운에 맞기는 경향이 많지만, 이 베팅은 상대방에 대한 엄청난 신뢰와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전제조건이 있다.(뭐, 다른 전제 조건이 우선인 경우도 많다, 남자는 키크고 돈 많고  집안이 부자여야 한다거나 여자는 쭉쭉빵빵 몸매에 청순하면서 섹시해야 한다거나 등등...^^;)

4. 사랑은 함께하면 만들어지는가?
6 개월간의 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 어느사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장점도 발견하게 되고 처음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 한마디로 처음에 없던 콩깍지가 눈에 씌였다는 이야기다. 요즘 인기가 좋은 "우리 결혼했어요"도 보면 함께 하다보면 없던 정도 생기고 서로 굉장히 친해지는거 같은데, 6개월 동안 동거 한다면야 사실 없던 사랑도 잘하면 생길수도 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때 정말 첫 눈에 반해서 사귀고 그게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보고 만나면서 정들고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신뢰가 생기고 그러면서 사랑도 하게되고... 그런게 자연스런 사랑이 아닐까?(첫 만남에 서로 눈에 불꽃이 확 튀고 섹슈얼 릴레이션쉽까지 가는 것도 사랑이라 못부를바 없지만 이런 건 여기에서 논외로 하자 ^^;) 사랑은 때에 따라서 만들어 지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 배려 이런 것들이 잘 버무려 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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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된 두 남녀,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한다]

5. 라스베가스에서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조이와 잭은 뻔한(?) 결말같지만 결국 서로 사랑하게 된다. 처음 시작은 설익은 풋사과같은 원나잇 스탠드였지만, 서로 함께하면서 결국 사랑을 만들어 내고 진심으로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생에 대해 결혼이라는 약속으로 서로에게 베팅(?)을 해보기로 한다. 결혼은 베팅이고 사랑은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100% 동의할수는 없지만 한 77.7% 정도는 동의하며 고객를 끄떡여 줄 수는 있을 거 같다.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가? 아니면 있는데 좀 지겨워 지는가? 그러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베팅하는 자세로 열심히 사랑할 대상을 찾아보거나 지겨워진 상대에 대해 이해,존중,배려를 가지고 더 집중해 보기 바란다. 그러면 없던 사랑이 만들어지거나 시들해지던 사랑이 다시 불꽃처럼 타오를지도 모른다. 이건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 눈 앞의 생활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덧.
1. 나도 그렇지만, 카메론 디아즈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다. 피부가 장난(?)이 아니다.
2. 영화초반에 라스베가스가 잠깐 나왔는데, 99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 본 라스베가스가 문득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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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미친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라! - 테이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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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우(狂牛), 광유(狂油), 광폭(狂暴) - 무서운 광(狂)의 시대
무서운 세상이다. 사람들이 겁에 질려 움추려드는게 즐거운듯, 이미 충분히 무서운데도 세상은 더욱 미쳐(?) 돌아가고 있다.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고기를 수입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먹으라 하고, 기름값은 연일 폭등해 자고나면 사상최고치 갱신이란 뉴스가 이젠 새롭지도 않다. 그뿐인가? 성폭행, 납치에 살인에 강도에 점점 더 세상은 흉폭해져만 간다. 광우(狂牛), 광유(狂油), 광폭(狂暴) 등 미칠 광(狂)을 어디에다 붙여도 다 잘 맞을 정도니 광(狂)의 시대라 불러도 될 정도로 어색하지 않을정도다. 이제 우리도 광(狂)한 세상에 이제 익숙해져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

2. 돈이 광폭한 범죄를 부른다.
그나마 소고기는 안사먹으고, 기름은 안넣으면 그만이지만, 납치나 인신매매같은 광폭한 범죄는 예고도 없고 누구나 그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더 무서운게 사실이다. 그러면 이런 인면수심의 범죄는 대체 왜 하는걸까? 너무나 뻔한 질문이자 뻔한 답같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돈때문이다. 쉽게 큰 돈을 벌려다보니 비정상적인(정상이 아닐때 우리는 미쳤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방법을 쓰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미친소 들여오고, 기름값 미친듯이 뛰는거며 이런것도 과도한 돈 욕심에 눈먼 사람들때문 아니겠는가...?) 영화 테이큰은 이런 광폭한 범죄의 대명사인 납치, 인신매매, 매춘에 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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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전직 특수요원 브라이언(리암 니슨)은 특수요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해 이혼당한 이혼남이다. 은퇴 후 딸에게 지난 잃어버린 세월에 대해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딸이 사는 곳 근처로 이사와 어떻게든 서로 친해보려고 노력하며 생활을 하는데, 딸이 프랑스로 여행을 갔다가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를 당해버린다. 프랑스로 딸을 찾아간 브라이언은 인신매매와 매춘업을 하는 범죄 조직에 맞서 열심히 싸워(다 죽여버리고) 딸을 끝내 구해낸다는 상당히 단순한 이야기이다.

3.돈이 필요한 사람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정말 "돈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를 찾는 여행객을 속여 납치해서는 마약을 주사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죽든 말든 남자들 욕정을 해소시키는 제물로 만드는 잔인무도한 범죄조직은 프랑스로 이민해와 어렵게 정착한 알바니아인들로 그려진다. 그렇다, 그들도 먹고 살기 위해 프랑스로 넘어왔고 돈이 필요해서 그런 일들을  업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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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필요해 인신매매를 하고 사창가와 경매장에 납치한 여자를 팔아넘기는 알바니아계의 이민자]


브라이언이 프랑스에서 활동했을때 동료였던 프랑스 현직 경찰 간부인 친구는 이 범죄 조직과 결부되어 뒷돈을 받고 이들의 인신매매와 매춘같은 범죄 활동을 일정부분 눈감아 주고 있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끔직히 위하는 참 자상한 아빠이기도 하다. 브라이언이 도움을 요청하지만, 선을 긋고 도와주지 않자 와이프를 볼모삼아 도움을 받아낼 때 고위 간부인 이 남자도 다 돈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정을 지키고 자식들을 위하려면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하고 돈이 더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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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소탕해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뒷돈을 받고 적당히 눈감아주는 브라이언의 친구 - 이 사람도 가족들을 지키고 잘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해서 그런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처녀만 모아서 돈 많은 부자들에게 경매에 붙여 노리개로 팔아버리는 일을 하는 사람은 꽤 상류층급으로 보이는데, 이 사람은 납치되어 매물로 내놓일 딸을 찾아 경매장(?)까지 온 브라이언을 잡아서 처리하기 직전에 자기 역시 아이가 있지만 이건 비즈니스라 당신에게 악감정은 없다고 말하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위기상황을 모면한 브라이언이 이 남자를 다시 찾아 분노의 총알을 날리는데, 이 남자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건 다 사업일 뿐이라며 사적인 감정은 없었으니 살려달라며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다 4발의 총탄에 운명을 달리한다. 비즈니스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돈 버는 거 아닌가...? 결국 이 사람도 돈 때문에 그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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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 남자도 돈이 필요해 사람 파는 경매업을 하고 있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 돈 때문에 사람을 납치해 팔아넘기기도 하고, 경찰이면서 범죄조직에게서 뒷돈을 받기도 하고, 돈이 많은 부자이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사람을 경매에 붙여 팔기도 한다. 돈은 그 사람이 가난하든 부자이든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돈에 미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돈이 무섭다.

4. 유쾌한 살인
돈이 좋은건 내가 원하는게 무엇이든 대부분의 것들을 다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그런 돈을 최대한 모으고 쓰는데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이렇게 비인간적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속성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의 지켜야 될 규칙과 규범안에서 돌아가야 진짜라고 할 수 있다.

테이큰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 규칙과 규범을 무시하고 눈앞의 돈만 보고 내달리다 결국 브라이언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실 브라이언이 딸을 찾는 일련의 과정속에서 악당들을 죽일 때 느끼는 속시원함은 한여름 오후에 맛보는 팥빙수 만큼이나 시원하고 달콤하다, 심지어 유쾌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범죄자에 대한 처단(?)이라기보다는,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이 무서운 광기의 세상에 대한 응징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5. 돈에 미친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라
무섭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미치지 않고 모든것이 다 정상인 세상에서 말이다. 물론 그것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이루어지기 힘든 큰 바램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 하나부터 정상적으로 바르게 살도록 노력한다면 또 그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어느 노래처럼, 사람은 돈보다 더 가치있고 아름다운 존재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다. 그걸 쓰느냐 안쓰냐는 내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이고... 우리 모두 돈에 미친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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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미친소 안먹겠다고 집회에 참가한 국민들을 정부가 폭력진압하고 연행해 가는 이 세상을 향해, 밤에 촛불 하나 들고 나가 이를 막는데 동참하는것도 미친 세상을 향해 당기는 방아쇠라면 방아쇠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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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만에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4, 해골 하나로 그냥 그렇게 끝나버리다 or 아날로그로 추억을 일깨우다

[영화보기/요즘영화보기]

1.인디아나 존스, 2008년 스크린으로 19년만에 귀환하다
19년은 참 긴 시간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한 아이가 태어나 유치원과 초중고를 마치고도 시간이 조금 남을 정도니 참으로 긴 시간이라 하겠다. 그 19년 긴 시간의 벽을 뚫고 인디아나 존스가 돌아왔다. 블록버스터와 어드벤쳐 영화의 원조이자 표준, 인디아나 존스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는 엄청나고 강력한 포스를 지닌 영화, 그 인디아나 존스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라는 부제로 돌 아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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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부터 옛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인디아나 존스4: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인디아나 존스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아드레날린이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분비되는 걸 느끼며 찾은 조조 영화관, 다른 영화의 예고와 광고가 이어지는 스크린도 곧 인디아나 존스가 시작한다는 기쁨에 흐뭇하게(?) 보아 줄 수 있었다. 이윽고 첫 화면이 올라오고 해리슨 포드가 가죽채찍과 예의 중절모를 쓰고 등장했을 때 난 나도 모르게 어린 10대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를 빌려서 보고 또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 시절, 몇 번이고 TV에서 재방송을 해도 놓치지 않고 보면서 넋이 빠져라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갔던 그 시절로 말이다.

2. 전작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이야기와 화면들
"인디아나 존스4: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시대가 조금 바뀌었을 뿐 전작들과 비슷한 이야기와 화면, 구조를 가지고 관객을 즐겁게 해준다. 대략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스포일러 포함)

미소의 대립으로 냉전체제가 한창인 1957년,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는 신비한 힘을 가진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을 밝혀 초자연적인 힘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진 소련의 특수부대 이리나 스팔코(케이트 블란쳇) 대령에게 쫓기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친구의 배신에다 정부로부터 소련을 도왔다는 의혹까지 받고 강의를 하고 있는 대학에서 해고까지 된다. 독일로 떠나가 새로운 생활을 하려던 존스는 시카고대학에서 동료로 일하던 올스 박사와 자신의 엄마가 위험에 처했다며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이 담겨있는 편지를 가지고 온 머트 윌리암스(샤이아 라보프)의 도움 요청에 크리스탈 해골을 찾아 페루로 건너간다. 우여곡절끝에 옛 연인 마리온 래번우드(카렌 알렌), 올스 박사를 만나고 머트가 자신의 아들임도 알게된다. 이후 마야 문명의 유적지에서 크리스탈 해골을 두고 소련의 특수부대와 쫓고 쫓기는 와중에 크리스탈 해골은 다른 차원의 생명체였고, 그들이 고고학자로 지구의 문화와 유물들을 수집하고 연구 하던 이들임을 알게된다. 마야 문명은 이 생명체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문명이었고, 이들은 모든 흔적을 지우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게 되며 이리나 대령을 비롯한 특수부대원들은 그 소용돌이속에서 다 죽는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존스 박사는 옛 연인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 머트와 함께 결합하는 걸로 영화는 끝난다.

3. 아날로그 스타일을 고집한 디지털 영화의 두 거장
인디아나 존스4는 사실 전작들과 비교해 19년의 세월이 흐른만큼 훨씬 더 스펙터클한 화면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구성으로 돌아왔어야 마땅한 영화다. 그 사이 CG를 비롯한 기술적 진보와 쥬라기공원, 터미네이터, 스타워즈, 매트릭스, 트랜스포머, 아이언맨 등과 같은 시각적 즐거움이 가득한 영화들로 눈높이가 한창 업그레이드 된 관객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화면 곳곳에 아날로그 느낌이 물신 묻어나는 인디아나 존스4는 상당히 모자라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밀림의 자동차 추격신이라던가, 고대 마야문명지 안에서의 액션신 등 재미있고 생동감 있는 화면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엄청나게 재미있다던가 정말 대단하는 느낌은 나지 않는다. 아기자기 하면서 이전 시리즈들의 연장선상에서 나름 잘 풀어냈다는 정도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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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 특유의 추격신이 돋보이는 밀림에서의 추격 액션 - 아날로그한 느낌이 물신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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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밝혀진 사실 - 존스박사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었고 그 엄마는 옛 연인었던 마리온]

인디아나 존스4의 제작진들은 이번 영화를 과거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강하게 자극하도록 하면서 현대적 감각으로 약간 업그레이드 된 영화를 만드는데 주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그들이 누구인가? 쥬라기공원, 마이너리티 리포트, 스타워즈 등 CG를 영화에 활용하는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쌍벽을 이루는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영화인데, 전체적인 영상과 액션이 일부러 아날로그한 느낌이 들도록 하지 않고서는 이런 영상이 나올수가 없다. (실제 인디아나 존스4는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었지만(트랜스포머의 ILM이 참여) 이는 전적으로 CG보다는 배우들의 실제 액션과 특수효과들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보조적 수단을 제공하는 선이었다고 한다)

4. 뭔가 아쉬운 이 느낌... 해골 하나로 그냥 그렇게 끝나버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느낌도 든다. 19년만의 귀환(?)이고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해리슨 포드 등 프로중의 프로들이 재결합해서 만든 영화인데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아날로그한 스타일에 치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트랜스포머나 아이언맨의 느낌은 아니더라도 좀 더 자극적인(?) 화면을 줄 수도 있었을텐데, 다소 소박한 어드밴쳐였다고나 할까, 뭔가 약간 모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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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소 약해보이는 소박한 어드벤쳐]


또 시나리오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총 6명의 작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우주전쟁의 데이빗 코엡이 마무리를 했다고 하는데, 전작들과 비교해 이야기 전개나 마무리가 조금 부실한 부분이 있다. 모든 영화의 구조는 시작, 중간, 끝이 있고 끝까지 향해 가는 각 단계에는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종국에 가서는 모든 의문/의혹이 다 풀리고 "이제 다 끝났다"는 개운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디아나 존스4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나 이리나 대령의 죽음과 다른 차원의 생명체가 자신의 해골과 몸체가 합체되어 이제 다 끝났다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는 끝부분은 억지로 이야기를 종료시킨듯한 느낌이 든다.(이해 또는 납득이 안간다는 이야기이다) 해골 하나 찾다가 그냥 그렇게 끝나버리는....어차피 액션 어드벤쳐 영화인데 너무 많은 걸 바라는게 아니냐고? 19년만의 영화이고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라는 그 명성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5. 그래도 인디아나 존스, 아날로그로 추억을 일깨우다
그래도 인디아나 존스에 대한 유년 시절의 유쾌한 관람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모나지 않는 무난함과 인디아나 존스를 처음 접하는 요즘의 어린 세대 친구들도 "아, 재미있다!"하며 볼 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문득 이승철이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해 가요프로에 나왔다가 시청자 게시판에 어린친구들이 신인인거 같은데 노래 참 잘하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세요 하는 글들을 남겼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 인디아나 존스5가 있다면 좀 더 업그레이드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환상적인 조화와 흥미진진하고 완벽한 스토리/구조로 거듭나기를 기원해 본다. 왜냐? 다른 것이 아닌 인디아나 존스니까!!!


1.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마야문명지 안이 무너지는 장면은 내셔널 트레저가 자꾸 연상된다.
2. 트랜스포머에서 어리버리하게 나왔던 샤이아 라보프는 존스 박사의 아들로 나오면서 여전하지만 그래도 약간 업그레이드되어 남자다운 모습을 약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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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혹은 욕망의 연대기

[영화보기/요즘영화보기]

1. 욕망에 대한 단상 -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해하거나 불행해 한다. 본능이라는 것은 가르치거나 배워서 아는게 아니다. 그냥 아는 것이다. 본능은 다른 비슷한 말로 충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본능이나 충동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처음 "하고싶다"에서 내부의 욕망이 더 커지면 이것은 압력이 되어 "하여야 한다"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더 나아가면 "반드시 해야한다"로 바뀐다. 이렇듯 본능이나 충동은 그것이 옳든 그르던지 간에 한방향으로 몰아가는 속성이 있다.

인간 활동의 근원은 충동(본능)에서 기인하는게 많고, 충동이 만족될 때 즉 하고 싶은 것을 할수 있을 때나,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인간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욕망이 충족될 때 인간은 행복하다.

나니아 연대기(캐스피언 왕자)는 그런 인간 속성이 참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화다. 비록 판타지라는 장르의 옷을 입었지만,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혹은 충동(본능)을 극복하고 얼마나 훌륭해 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다.

2. 줄거리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차 세계대전중인 영국, 나니아에서 현실로 돌아온 게 1년이 지났지만, 페벤시 남매는 아직도 그 곳을 잊지 못하며 살고있다. 그때 나니아에서는 왕위 계승자인 캐스피언왕자가 왕위을 빼앗으려는 교활하고 잔혹한 삼촌 미라즈에게 쫓기게 되고 페벤시 남매를 나니아로 소환하는 나팔을 불어 도움을 청하게 된다.

나니아는 페벤시 남매가 떠난 이후 1,300년이 지나 황금기가 끝나고 텔마린족(인간)에게 멸망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캐스피언과 페벤시 남매는 나니아인과 세력을 규합해 미라즈 군대와 불리한 전투를 하게 되지만, 다시 나타난 아슬란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후 페벤시 남매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캐스피언 왕자는 왕이 된어 나니아는 평화를 되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욕망의 피해자 - 왕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형을 죽이고 그 아들까지 죽이려다 부하의 배신으로 죽는 미라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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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욕망의 피해자

나니아 연대기에 있어 주요 사건은 "내가 왕이 되고 싶다"는 하나의 욕망에서 출발한다. 왕이란게 무엇인가? 절대 권력으로 만물(?)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자... 남자라면 알것이다. 군대에서 장교도 아닌 말단 사병이면서도 왕고참인 병장만 되어도 얼마나 절대적이면서 한편으로 달콤한 권력이 생기는지 말이다. 하물려 왕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형을 암살하고 아직 왕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1인자가 된 텔마린족의 미라즈는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자, 왕위를 자기 아들에게 주려고 형의 친자이자 왕위 계승자인 캐스피언 왕자를 죽이려 한다.(캐스피언만 없으면 자신도 왕이 되고, 그 왕위도 자기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 결국 미라즈는 그 욕망을 쫓아 친조카인 캐스피언을 나니아인과 결탁한 배신자로 누명을 씌워 왕국의 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자신이 왕이 된다.

미라즈 휘하에 있는 영주 소페스피언도 호시탐탐 왕이 되고자 한다. 이 욕망은 텔마린족의 장군 글로젤과 공모해 미라즈왕을 나니아인과의 전투에서 피터와 1:1 결투를 하게 만들고, 글로젤 장군은 결투에 졌으나 캐스피언의 용서를 받아 목숨을 건진 미라즈를 몰래 살해해 버린다. 소페스피언은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글로젤은 미라즈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고 자신의 부하들이 미라즈로 인해 죽게 되자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미라즈를 죽여 버린다. 욕망은 이렇듯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혈육도 충성과 신뢰로 서로 의지해야 할 군신관계도 다 발톱에 낀 때만큼도 못한 걸로 만들어 버린다.

캐스피언이나 피터 역시 마찬가지이다. 캐스피언과 피터는 처음에 서로 반목한다. 자기 생각이 맞다고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나니아인을 통솔하는 리더쉽을 두고 서로 경쟁하며 미워한다. 캐스피언은 죽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의 욕망으로, 피터는 자기가 다 맞고 자기가 시키대로만 하면 텔마린족을 이길 수 있다는 자만과 오만의 욕망으로 수많은 나니아인을 전투에서 죽게 만든다. 그게 미라즈든 캐스피언이든 피터든 욕망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4. 욕망의 극복자
사람이 너무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빠지다 보면 맹목적이 된다. 다른 가치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내가 바라는 것을 위해 충동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만 행동하게 된다. 사람이 그러하다면 동물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절제라는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가치있다는 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산다.

캐스피언은 미라즈를 자기 손으로 직접 죽여 복수할 수 있는 순간에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용서를 택한다. 피터 역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캐스피언과 함께 오만함을 벗어던지고 겸손이라는 가치를 배운다. 이 모든 것이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다. 욕망을 절제할 수 있을때에라야만 인간은 무분별한 행복에서 벗어나 마음이 평안한 행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욕망의 극복자 - 캐스피언과 피터 모두 "절제"라는 가치로 욕망을 극복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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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니아 연대기- 욕망에 대한 교훈적 시선을 가진 영화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해하거나 불행해 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망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 같지만, 한 겹 더 들어가서 살펴보면 결국 이것은 각자의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이다. 나니아 연대기는 무분별한 욕망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고, 절제된 욕망은 행복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어떡할 것인가? 욕망을 지배할 것인가 아니면 욕망에 지배당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 단상들]

1.영화 중간 중간에 조금 지루한 부분이 몇 군데 있는 편이다.

2.나무들이 텔마린족 군사를 멸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반지의 제왕이 오버랩되어 좀 싱겁게 느껴졌다.

3.하얀마녀도 잠깐 등장하는데, 너무 빨리 아웃(?)되어 약간 섭섭했다.

4.생쥐 기사는 필요 이상으로 너무 오버해서 첨엔 귀여웠으나 나중엔 호감이 반감되었다.

5.전투씬을 나름 신경쓰긴 한 거 같은데, 요즘은 어지간해선 감흥을 잘 못느끼겠다.

6.이 영화 역시 CG가 지대한 역할과 비중을 하고 있다. CG없으면 영화도 못만드는 세상이 점점 더 빨리 다가 올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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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필름 테크놀이라는 신장르 혹은 테크놀러지에 점령당하고 있는 스크린

[영화보기/요즘영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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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동차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차 욕심도 많다. 비록 내 현실 속의 차는 슈퍼카나 럭셔리카와는 거리가 먼 남루하고 소박한 차이지만, 모터트랜드나 탑기어, 자동차생활 같은 자동차 잡지를 매달 2-3권씩 사보며 고성능 울트라 슈퍼카에 대한 동경(?)을 키워갈 정도니 관심이 꽤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스피드 레이서를 보았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었다는 사실과 거기에다 자동차 경기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 내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놓칠 수가 없어서 개봉일에 바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스피드 레이서의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자동차 레이싱을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처럼 신성시 하는 가족기업
레이서 모터스와 자동차와 레이싱을 승부조작을 통해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대기업 로얄튼 그룹의 대결이 주된 이야기이다.

주인공 스피드(에밀 허쉬)는 천부적인 레이서로 로얄튼 그룹 회장(로저 알람)과의 대결 속에서 결국 승리를 거두는데, 이 밑바탕에는 헐리우드 특유의 가족애와 정의는 승리한다는 도식적인 공식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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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야기해 스피드 레이서의 스토리는 진부하고, 발생하는 사건들에 있어 플롯이라 할 만한 필연적인 인과관계의 조밀함은 보이지 않았고, 각 캐릭터들은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한 객체가 아니라 화려한 영상의 부속물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화(시나리오)의 양대 축으로 흔히 플롯과 캐릭터를 이야기 하기도 하는데, 스피드 레이서는 플롯 중심(사건 발생과 그 연결고리들이 주는 치밀함, 즉 사건의 향방)의 영화도 아니고 캐릭터 중심(주인공의 운명과 그 변화 과정)의 영화도 아니다. 물론 아예 그런 부분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영화상에서 플롯이나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비하다는 이야기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플롯과 캐릭터 보다는 볼거리가 화려하고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주는 영상 중심의 영화다. 플롯과 캐릭터, 스토리는 그냥 영상에 짜맞추어진 구색 맞추기라고나 할까? 아무리 영화가 일부러 원작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핵심만 뽑아서 간소화하고 실감나는 레이싱 경주 장면에만 역량을 집중했다 하더라도, 워쇼스키 형제의 명성과 매트릭스가 주었던 낯설고 충격적이었던 영상 기법과 거기에 더해진 주제의 심오함을 생각해 본다면 스피드 레이서는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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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CG로 영상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볼만한 영화, 스피드 레이서]

 

나의 이런 인색한 평가를 워쇼스키 형제가 들었다면,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야 그냥 우리가 좋아했던 원작 만화를 충실하게 재연하고 가족용 영화로 부담없이 누구나 보기에 좋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볼멘 목소리를 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실 나도 화려한 영상이 주는 즐거움과 격투기를를 방불케 하는 자동차 경주 장면만으로도 일정 부분 만족스럽게 본 부분도 있으니 이렇게 평가에 꼭 인색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이 화려한 영상미가 전부는 아닐진데 다른 부분들은 점점 희석되고 영화가 CG라는 테크놀러지에 점점 종속되어는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씁쓸한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의 한 장르로 필름 누아르
(film noir)가 있다. 필름 누아르는 미국 헐리우드에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1940년대 뒷골목을 배경으로 갱, 범죄, 폭력이 주된 내용인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를 이야기한다.(필름 누아르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1980년대에 홍콩에서 홍콩 누아르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허무와 절망, 음산함, 불안함 등을 주로 표현하는 누아르는 현대 사회의 비정함과 비인간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형식과 내용이 다분히 그럴수 밖에 없다 하겠다.

 

스피드 레이서를 보고 나서, 나는 문득 스피드 레이서를 필름 테크놀(film technol) 장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컴퓨터 그래픽(CG)을 기반으로 스토리, 플롯, 캐릭터 같은 영화의 내적 요소 보다는 테크놀러지의 힘을 빌려 화려한 영상에 집중하는 영화의 흐름을 통칭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 정점에 주인공 자체도 사람이 아니라 로봇인 트랜스포머가 있고, 최근 개봉한 아이언맨, 스피드 레이서 역시 트랜스포머 못지 않게 CG로 모든 것을 말하고 표현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국산 영화로 작년에 개봉한 디워도 포함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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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려 만약 필름 테크놀러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그 시발점이자 논란의 여지없이 원조로 기록될만한 영화, 트랜스포머]


 
기술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를 살다 보니, 이제 영화의 본질 자체도 꽤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무엇을 담고 있느냐 보다는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고 우선시되는 흐름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전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보거나 상상만 해볼 수밖에 없던 것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즐거움이 있어 좋긴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 너무 진부하고 고루한 것일까?

 

스피드 레이서를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나의 이러한 고민이 점점 더 커져간다. 이러다가 테크놀러지에 스크린이 완전히 점령 당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철학과 영혼이 있어 사람을 감동시키는 테크놀러지가 진정한 테크놀러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그리고 또 그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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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때문에 잊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잊지 못하기 때문에 기억 하는 걸까?

[영화보기/옛날영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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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지난 날들과 지나가버린 사람들을 생각할 때가 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이따금 나도 모르게 생각이 난다.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사랑을 할 때는 앞으로의 일들을 알지도 못한 체, 그저 맹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잊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든 걸 털어 넣는 데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헤어짐을 전제로 만나는 만남은 넌센스다. 그러나 상대가 누구이든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기에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막상 그런 순간이 자신의 눈 앞에 닥치고 나서야 허둥거리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는다. 단지 이 때는 앞서 말한 지난 날들, 지나가버린 사람들의 목록에 누군가의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별로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생(生)이지만, 가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나는 흠칫 놀라게 된다.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나는 만나고 헤어지고 그랬던 것 같다. 개중에는 정말 잊기 힘든 아니 잊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변으로 비켜나가 지금은 이름과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는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다.

“연애소설”이라는 다소 통속적인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제목이 좀 통속적이면 어떠하랴? 우리 삶 자체가 다분히 통속적인걸... 참 오랜만에 가슴이 아프고 뭔가 텅 빈 듯한 아련한 느낌을 맛보았다. 줄거리가 어떻고, 주인공들의 심리가 어떻고, 영화 장면 장면과 주인공의 어떤 행동이 의미하는 것은 이런거다 하는 등등의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이 영화는 그냥 느끼면 된다. 굳이 분석하고 의미를 찾고 따질 필요가 없다.

현실과 소설 사이의 차이점은 뭘까? 교과서적 지식으로 보면 현실 세계에 있을 만한 일을 꾸며 적은 글이 소설이라고 배운 것 같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이나 영화는 현실보다는 조금 환상적일 경우가 많다. 요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 힘들거나 불가능한 일들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는 꽤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리 만족적인 재미 때문에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보는 이가 꽤 될 것이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환상은 흔히 사랑 혹은 연애라는 이름으로 치환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연애는 다분히 소설적이다. 다른 사람과는 별 의미 없는 작은 것 하나도 그 사람과라면 모든 것들에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고 심지어 황홀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그 또는 그녀의 목소리, 어쩌다 스치는 손끝, 우연히 마주친 눈동자... 이런 사소한 모든 것들이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황홀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연애가 충분히 소설적임을 증명해주는 하나 하나의 작은 증거들이다.

영화 “연애소설”은 연애소설의 기본 줄기들을 충실히 따라갔다. 누군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쉬워하고, 잊지 못하고... 지환(차태현)은 홀로 남는다. 지환은 앞으로 살아 가는 동안 내내 잊지 못하고 또 가슴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가슴에 아로 새겨진 기억들은 그를 살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큰 힘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는 “사람이란 살아온 날들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중에서)”라는 말도 있고, “당신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한 사랑에서 거부당하면, 수백개도 넘는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는 단 하나의 진실한 사랑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세상에는 수 많은 진실한 사랑이 있다.(레오버스카글리아의 'LOVE' 중에서)”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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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웅에 대한 서사시-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영화보기/요즘영화보기]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이 있을까?  자신의 생이 다한다는 것만큼 오싹하고 서럽고 처량한 건 없는거 같다. 더구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가급적 피하고자 하는게 인지상정(人之常情 )일터,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신념 때로는 미친듯한 열정이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삼국지-용의 부활을 봤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같은 영웅서사시를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상산 조자룡이라는 한 영웅의 주요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신의와 의리,  충성, 명예,신념 같은 이제 이세상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가치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국지 용의부활의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지러운 전란의 시기에 촉군에 무명의 병사로 합류한 조자룡은 용맹함과 뛰어난 무술로 신임을 얻고, 조조군을 피해 달아나던 유비의 식솔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자를 1만적군 사이에서 종횡무진하며 혈혈단신으로 구해내는 공을 세우고 이후 승승장구해 오호장군의 최고 위치까지 오른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함께 하던 오호장군들중 관우, 장비, 황충, 마초도 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조자룡만 홀로 남아 마지막으로 왕의 명령을 받들어 삼국통일을 위해 전장에 출전한다. 하지만 쇠약해진 국력과 내부의 배신으로 조조군에게 포위당하게 되고 조조의 손녀 조영과 마지막 일전을 치루다 생을 다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꽤나 단순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 내용과 많이 다른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삼국지 원전 자체도 허구가 가미된 소설이라고 본다면 영화에서의 이정도 변주(?)쯤은 용인할만 하다 하겠다.

영화속의 조자룡은 의리와 충성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나중에 자신을 배신하지만 형님으로 생각하고 아끼던 나평안(홍금보)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유비의 아들을 구하러 1만 대군 사이로 홀로 나서고, 삼국통일을 이루고 말겠다는 신념과 충성심으로 나라를 위해 한평생 전장을 누비며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여인을 만나지도 못하고 자기삶을 희생한다.

그러한 삶이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돈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의리, 신념, 사랑도 헌신짝처럼 벗어 던져버리는 요즘 세상의 가치관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의리를 챙기고, 사사로운 물욕을 위해서 신념을 가지고 덤벼들며, 사랑도 조건화시킨다. 정치전문가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경제살리기"와 "뉴타운공약"같은 걸로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하는 요즘 세태를,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잘 파악한 "욕망의 정치"로 승리했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이제 도덕이니 고결함이니 하는건 그냥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일 뿐, 욕심과 탐욕이 지배하는 욕망의 세상이 온 것이다.

이러한 욕망속에 우리 삶은 순간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이 자신을 위해 남을 위해하거나 이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 선택으로 인해 해를 입거나 이용 당하기도 한다. 바른 선택이란 무엇일까? 내가 잘되기만 하면 그게 좋은 선택일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야 어찌되든 자신이 잘되는 길이 올바르고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조자룡이 참 안쓰러웠다. 나평안(홍금보)의 부주의로 유비의 식솔을 잃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어 나평안을 처형하려 하자, 조자룡은 고향 형님인 나평안을 대신해 자기가 유비의 가족을 찾아오겠다고 나선다. 엄청난 적군이 눈 앞에 있고 나가면 거의 죽음이 목전인데,  왜 죽을줄 알면서 자신도 아닌 다른 사람을 대신해 유비의 아들을 구하러 갔을까?  또 노년에 접어들어 후방에서 편히 쉬면 될걸 그 삼국통일에 대한 신념이 무어 대단하다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에 부득불 뛰어 나간단 말인가? 조자룡은 내 기준에서 보면 참 융통성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또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에 올바르지 못한 선택만 하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런 조자룡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고, 또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삼국지는 용의부활은 조자룡을 통해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의리, 신념, 충성, 명예 등과 같이 인간을 인간으로 더 빛나게 해주는 가치들은 목숨을 다해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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