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이, 두 돌 기념으로 아이모리에서 앨범을 만들다.

[하고 싶은 것과 한 것들/한 것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가 망각이라고 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을 신이 인간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망각 속에는 기억해야 할 또는 기억하고 싶은 일들도 어찌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어 이게 꼭 축복 받은 일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부모된 입장에서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 할 수 없는 아주 어린 시절의 이런 저런 다양한 모습과 에피소드들을 잘 정리해서 전달해 주는 것도 좋은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나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 이게 과연 내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빛바랜 흑백 사진 몇 장이 그 시절을 간신히 대변해 줄 뿐이다. 그나마 그런 사진도 그다지 많이 있는 편도 아니다. 1970년대 그 시절, 그 세월이 그러했으니 내 어린 시절 사진이 적음에 대해 우리 부모님에 대한 불만은 없다. 하지만 좀 아쉽기는 하다...

지난 5월에 두 돌을 맞은 우리 현빈이는 이런 저런 모습을 모두 기록해서 다 컸을 때 자신의 지난 어린 시절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참 사진도 많이 찍고 동영상도 많이 남겼다. 그래서 결심하기를 1년에 한 번 씩 기록해 둘만한 의미있는 사진들을 모아서 앨범을 한 권씩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게으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차일 피일 미루다, 두 번째 생일을 두 달 넘긴 지난 주말에야 07년 5월~ 08년 5월 까지의 사진 중 괜찮은 것들을 모아 아이모리에서 앨범책을 만들었다.

참 좋은 세상인게 작년에 만들 때에 비해 앨범의 질이나 디자인이 상당히 업그레이드 되어 있어 올해는 더 만족스러웠다. 앨범책에 쓸 사진을 고르는게 일이었지, 막상 앨범책 만드는 작업 자체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앨범은 "현빈, 세상에 나오다"였고 두번째 앨범의 제목은 "현빈, 세상을 느끼다"로 정했다. 작년에 첫 돌을 맞아 만든 앨범과 올해 두 돌을 맞아 만든 앨범을 서로 비교해 보니 참 신기했다. 현빈이의 모습도 많이 변해있었고 앨범 자체도 많이 변해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아주 많이 느껴진다는 이야기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앨범 표지가 달라졌다(물론 가격이 비싸졌지만^^;),사진을 인쇄해 북커버 형식으로 비닐로 덮는 방식에서 앨범북에 직접 인쇄 방식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비닐 방식은 안에 습기도 차고 오래 보존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인쇄 방식이라 더 깔끔하고 보존력 걱정도 좀 덜어질 거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년에 만든 앨범과 이번에 만든 앨범을 같이 놓고 현빈이의 커 가는 모습을 한 번 비교해 보았다. 정말 많이 컸다]

말도 못하고 그저 눈만 껌뻑이며 누워있거나, 좀 더 커서 간신히 기어 다니고 어렵사리 두 발로 서서 걷던 아이가 이제는 뛰어 다니고 하고 싶은 말을 큰 어려움없이 뱉어내며, 엄마 아빠를 자기 의지대로 조종(?)하는 영악(?)한 아이로 커 버렸다. 첫 번째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을 비교해서 보면, 표정도 한껏 살아있고 참 어른스러워 보이는 현빈이가 떡하니  앨범 속에 버티고 있어 보면 볼 수록 새로운 느낌이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년 추석 때, 팬션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 이런 즐겁고 평화로웠던 한 추억들이 현빈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렴풋이나마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년과 달리 올해는 UV코팅 옵션을 선택해서 제작을 했다. 작년 앨범북에 비해 사진이 더 선명해 보이는 느낌이고 하고 종이도 더 두꺼워진 듯 하다. 부드러운 질감은 그 나름대로 선명한 것은 선명한대로 다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잘 보존되어야 한다면 UV코팅 처리 된 앨범북이 더 좋을 것 같다]

아이모리 앨범은 앞으로도 1년마다 하나씩 계속 만들어서 성장앨범 형식으로 보관했다가 현빈이가 다 커서 적정한 때가 되면 선물로 줄 생각이다. 지금은 책꽂이에 두 권이 꽂혀 있다. 세월이 점점 흘러가면서 우리 아이도 한창 커 나갈것이고 앨범도 늘어나 이 한 켠을 다 메우고 또 다른 칸을 필요로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쯤이 되면 내 자신의 나이들어감과 지난 세월이 아쉽기도 하겠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내 앞에 대견하게 커 있는 현빈이를 보면서 참 뿌듯하면서 가슴벅찬 기쁨을 느낄 것 같다. 우리 현빈이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해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포토북 프로그램에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사항 몇 가지

1. 사진 이동 좀 편하게 하자.
포토북을 만들 때 사진들이 날자순으로 정렬이 되는데, 앨범을 만들 때 항상 날자순으로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테마를 가지고 페이지를 구성하기도 하는데, 그걸 위해 사진들의 순서를 이동하려면 포토북 프로그램에서는 한 번에 하나씩의 사진밖에 이동시킬 수 없다. 한 두장이라면 모를까 여러 개 사진의 순서를 바꾸려면 마우스 클릭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지 손가락에 땀이 날 지경이다. ^^; 한 번에 복수개의 사진을 선택해서 이동 가능하도록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앨범 페이지 분량 조절도 가능했으면...
포토북은 기본적으로 제작 전에 몇 페이지로 만들지 결정하고 그 이후 프로그램을 통해서 편집을 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앨범북을 만들다 보면 전체 페이지를 더 늘리고 싶거나 줄이고 싶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써서 문구도 입력하고 사진 위치도 조정하면서 거의 다 만들었는데 꼭 넣고 싶은 사진이 있었으나 페이지가 모자라서 집어 넣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2페이지만 더 늘리려 했는데  프로그램상에서는 늘릴 수가 없었다. 자세히 찾아보니 포토북은 일단 페이지가 정해지면 중간에 늘릴 수가 없는 구조였다. 결국 페이지를 늘리거나 줄이려면 다시 처음부터 페이지수를 설정하고 사진 불러오고 편집하고... 지금까지 했던 작업이 다 날라가고 첨부터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얼마나 불편한가? 다른 건 몰라도 중간에 페이지 분량을 가감할 수 있게 이 점은 꼭 고쳐주었으면 한다. 아래 그림에 간단히 표시했지만 중간에 앨범 매수 변경이라는 버튼을 두고 빈 페이지를 넣을 수 있게 하거나 기존 페이지를 삭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산뜻하고 깔끔한 독도티 하나씩 어떤가요?

[생각하고 느낀것들]
울릉도는 커녕 태어나서 지금까지 30년이 훨씬 넘게 살았지만 독도에 가 본 적이 없다. 독도는 다만 어린 시절부터 들어 온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로 시작되는 노래 가사로 각인된 먼 미지의 섬일 뿐이었다. 그리고 간혹 일본에서 죽도 어쩌고 하면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한 번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발끈하게 되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드는 한편으론 또 불쾌함의 대상이었다.

가수 김장훈이야 익히 좋은 일 많이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라 그의 좋은 일 기행(?)은 잘 알고 있었지만, 뉴욕타임즈에 낸 독도 광고는 참 의외였다. 그냥 번 돈 모아서 기부하고 어려운 사람 돕고 봉사활동 하는 그런 사람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독도 관련 망언이 나올때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데 최근 그런 일이 있지도 않았는데 뉴욕타임즈에 전면광고를 내다니 말이었다.(그런데 그 광고가 집행 된 몇 일 후 절묘하게 일본의 망언이 있었다.ㅠ.ㅠ) 암튼 김장훈을 다시 보개 되었다. 여러 가지로 참 의식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 인터파크에서 독도 티셔츠 판매가 시작되었다. 김장훈의 뉴욕타임즈 광고를 참고해 만든 것으로 독도 홍보에 동참하고자 인터파크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티셔츠라고 한다. 내가 우리 땅 독도를 위해서 크게 할 바는 없지만 이런 티셔츠 하나 사서 입는 수고(?)와 비용 정도는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

디자인도 심플하면서 깔끔하고 배송비 무료에 가격 또한 2,900원으로 엄청 착한데, 이게 중국산도 아니고 Made in Korea 국내생산 제품이라 한다.(지인을 통해 들은바로는 원가가 5천원에 살짝 못미치는 금액인데 독도 홍보를 위해 인터파크에서 배송비와 상품가격을 일부 부담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밑지는 장사라는 이야기다. 아침에 걸어서 1시간도 안되어 1천장이 넘게 나갔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블루와 화이트로 전체적으로 시원하고 산뜻해 보인다. 올 여름 날도 더운데 독도 티셔츠로 더위를 달래며 거리를 활보해 보는 것도 좋겠다. 혹 해외로 여행 나가는 분들은 필수로 한 벌씩 구매해서 입고 나가시기 바란다. 그래도 이 옷 입고 다니면 한사람이라도 한국과 독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그리고 아깝다. 지난 주에 1주일간 태국 여행 다녀왔는데 좀만 더 빨리 나왔어도 이거 사서 입고 다녀왔을텐데...^^;)

와이프와 내 거 2개를 주문할 생각이다. 혹 이 포스팅을 보고 옷이 마음에 드시는 분들이 있다면 착한 가격에 제품의 퀄리티도 괜찮은거 같으니까 주문해 보기 바란다.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보다 더 싼 가격이다.ㅎㅎ( 티셔츠 이미지 클릭하면 상품페이지가 새창으로 뜬다)지금은 티셔츠지만 사지만 언젠가는 한 번 독도에 가보고 싶다.... Do you Know? dok-do

,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설레이기 마련이다.

[간 곳과 만난 사람들/간 곳]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설레이기 마련이다. 처음 앞에는 언제나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해 알지 못하는 미지의 그 무엇들이 무수히 도열해 있기 때문이다.

첫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내 노동의 댓가로 돈을 받고 하는 사회 생활이 처음에는 참 낯설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직장생활은 초중고대학까지16년 동안의 학교 생활과 26개월의 군대라는 단체 생활과 참 많이 달랐다. 학교때보다 더 좋은 것도 있었고 더 나쁜 것도 있었다.

나는 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되어 2000년 2월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SDS라고 삼성 계열사의 IT를 책임지는 회사였는데 나는 마케팅팀에서 인터넷마케팅 파트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삼성에 대해 이런 저런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을 논외로 하고 단순하게 내가 속했던 팀만 두고 보면 난 참 행복하게 회사 생활을 했다. 팀장님은 합리적이고 아랫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셨고 팀 전체가 좋은 분위기 속에 운영될 수 있도록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셨다. 팀원들 역시 참 좋았다. 처음 8명 정도에서 시작해 거의 30명까지 늘어났다 줄어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좋은 상사분들과 배울 것이 많았던 선배, 동료, 후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사수로 끊임없이 나를 하드트레이닝 시켜 진정한 일꾼(?)으로 거듭나게 해준 나의 멘토 태준선배, 파트가 달라  거의 같이 일을 해 본 적이 없지만 여러 가지 새로운 시각으로 일과 세상을 보도록 알려준 종선배, 업무가 기획쪽으로 바뀌면서 아낌없는 지도편달을 해주셨던 편수석님, 이수석님, 마케팅/이벤트 업무 전반을 관장하며 항상 유머와 위트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던 배수석님, 홍보/잡지 일로 같이 일을 하다 지금은 디자인정글의 CEO로 있는 진영선배님,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큰 형님처럼 어린 후배들을 다독여주시던 용책임님, 유일하게 서로 말을 놓고 친구로 지내던 늦깍이로 마케팅팀에 합류한 준우(근데 지금도 같은 팀에 계속 있으니 내가 근무한 근 4년 동안보다 더 오래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 첫 직장, 첫 팀장님으로 지금도 변함없이 존경하는 이철준팀장님...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2년 5월, 주말에 봉사활동하러 나갔다가 찍은 팀 사진]

그냥 간단히 생각나는대로 써보아도 참 많은 좋은 분들과 함께 했던 거 같다. 6/24 집에서 쓰는 유무선공유기가 이상이 있어 AS를 받으려 보니 분당에 AS센터가 있었다. SDS 분당 사옥과 2정거장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거기에 갔다가 잠시 사무실에 들렸다. 분당에라곤 갈 일이 거의 없어 2003년 10월 퇴사한 이래 사무실에 거의 가보지를 못한 거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 간만에 찾은 분당 사옥, 근 5년 만인가...?]

사실 선릉, 역삼역쪽 본사와 지사(?) 건물에 쭉 있다가 조직 개편하면서 분당으로 사무실이 옮겨간게 퇴사하는데 한 10%는 작용한거 같기도 하다. ^^; 이후 많은 분들이 분당쪽으로 이사도 하시고 그랬는데, 나는 당시 신도림쪽에 살면서 분당의 오리역까지 통근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어찌되었던 이런 저런 이유로 약 3년 10개월 간의 첫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거의 5년만에 다시 찾은 사무실은 내가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아서 들어가야 했다는 것과 사무실 안의 팀들과 개인 자리 배치들이 많이 바뀌었다는 거 빼곤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구획별로 크게 파티션되어 있는 사무실....]

사무실에서 편/이수석님도 뵐 수 있었고 준우랑 저녁도 먹고 차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다 왔다. 담에 정식으로 여러 사람들 모아서 술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참 보고 싶은 얼굴들이 많다...
 


,